©Eunjeong Kim

작은 것을 보는 방식
[김은정: 가장 희미한 해]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2021.4.7-4.28

안소연
미술비평가
 

가장 희미한 해, 그 말의 모순이 어떤 이미지가 되었던 모양이다. 김은정은 책에서 “가장 희미한 해”라는 소제목과 그 제목 밑에 놓인 “지나간 시간의 기억은 일종의 꿈 또는 유령 같다”는 첫 문장을 읽고, 다른 장면을 기억해냈다. 해(年), 태양, 희미한 태양, 가장 희미한 태양, 그것의 모순된 이미지를 그는 떠올렸다. 내가 알기로, 눈부시게 뜨거운 태양은 한때 빛을 낚아채려 했던 화가(모네)에게 실명을 선고하거나 미궁에서 탈출한 이카루스에게 바다(해海)로 추락해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태양은, 볼 수 없는, 가장 희미한 실존을 나타낸 셈이다. 김은정은 자신의 미묘한 오독이 이끈 상상과 그것으로부터 연쇄되는 이미지들을 쫓았다. 이번 전시 ⟪가장 희미한 해⟫에는, 그 언어의 단서와 파편적인 이미지들의 연쇄가 각각 전시 제목과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상기시키며 공존한다. 
<오늘의 날씨>(2021)에서는, 노란 물감이 (불확실한) 세 사람의 형상 사이를 깊숙이 파고들어 역동적인 분사의 궤적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중력을 향해서는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배경에 어떤 커다란 형상이 더 있을 것 같지만, 이 노란 물감의 출현과 그 움직임이 (원래 그림 안에 존재했던) 많은 것을 흐릿함 가운데 밀어 넣고 있다. “오늘의 날씨”라는 제목과 저 그림 속 한 순간의 이미지는, 애초에 전시 제목과 작품들 사이의 관계만큼이나 희미하면서도 긴밀해 보인다. 그 내막에 대해서, 김은정은 장면을 수집하여 재구성하려는 자신의 강박적인 습관을 말하면서 그를 둘러싼 “해”, 즉 그 강렬한 희미함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날씨처럼, 평범하고 진부한 것을 희미하게 가리고 어떤 균열을 만들어내는 상상적인 순간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현실의 보편적인 “공통 경험”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개별적인 사건들에 집중했다. 요컨대, 김은정은 거대한 서사와 보편적인 감각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고 개별적인 우회적 사건들에 주목해, 시선을 잔상처럼 희미한 형상들에 머물게 한다. 그것은 그가 현실의 모든 경험들을 뚫고 출몰하는 불완전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굳이 그의 상상을 가늠해 보자면, <오늘의 날씨>에 대한 감각은 <동해바다>(2021)의 화면을 구성하는 시각 정보들과 자연스럽게 중첩되고, 그것은 <녹지 않는 사람>(2021)의 단단하고 푸른 얼굴에 대한 희미한 단서처럼 의심스러운 서사를 상상케 한다. 예컨대, 검은 대기를 채운 노란 색/빛의 분무처럼 <동해바다>에는 밤의 대기와 수면 위로 비가 바람에 밀려 내리고 있다. 김은정은 물 한 가운데 나무처럼 서 있는 사람과 비의 움직임을 나란히 중첩시켜, 거대한 세계가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익명의 한 사람이 겪어내는 찰나의 감각을 강조한다. 나란히 놓인 <다정한 얼굴>(2020)과 <그날 꿈에 나온>(2021)은 그러한 정황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뒷받침해준다. 김은정은 <녹지 않는 사람>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연쇄를 이어간다. 이때 그는 마치 시적 언어들처럼, 거대하고 단단한 언어의 상징체계를 살짝 비켜서서 불확실한 언어의 파편들에 희미하게 남겨진 혹은 거의 사라진 알레고리적 상상력을 재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동용궁사>(2021)과 <다섯 해>(2021)에서는 <녹지 않는 사람>과 연결된 성상(聖像)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다시 그가 오독했던 해(日/年)의 서사로 되돌아 온다. <해동용궁사>에서 끊긴 채 희미한 존재로 남아 있는 묵주의 둥근 원형이 비둘기 색 접시 위에 선명하게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동해바다에서 해동용궁사로의 비약적인 서사적 연결과 적어도 <녹지 않는 사람>과 <해동용궁사> 사이에, 그리고 <해동용궁사>와 <다섯 해> 사이에서 개별적인 형상들이 끊임없이 기표를 연쇄시키듯 미끄러지며 반복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재)발견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객관적 우연에 의한 ‘경이(le merveilleux)’와 닮아 있다. 그것은 계속되는 반복/중복에 의해 발생하는 현실에서의 마술적인 사건이다.

전시 공간 안에 일련의 ‘발견된 오브제’처럼 삽입되어 있는 두 개의 세라믹 연작 <잠든>(2015)을 보자. 한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장식품처럼 만들어진 형상은, 웅크려 “잠든” 사람과 두루미임에 분명하나 정황도 내막도 없다. 전시 공간의 건축적 구조 안에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나무 기둥의 작은 홈 안에 넣어둔 이 두 개의 웅크려 잠든 형상은 이미 과거에 작가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서, ⟪가장 희미한 해⟫의 서사에 다시 등장했다. 김은정은 반복과 재구성의 원리로 회화적 서사를 (분열적으로) 구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작업 또한 수수께끼 같은 비선형적 서사 안에 편입시켜 놓은 셈이다. 

문지방을 넘듯 둘로 나뉜 공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면, 색은 그 경계에 잠시 머문 듯하더니 이내 지워졌다. 예컨대, <녹지 않는 사람>과 벽의 앞뒤/안팎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숲의 소란>(2021)까지, 색을 단서로 연쇄했던 시각적 충동의 흐름은 거의 사그라든다. (하나 더, 그 문지방에 걸쳐 있던 <그녀>(2021)까지 포함해서.) 어떠한 전환이 일어나는데, <숲의 소란>은 색으로 물들었던 시지각적 상상을 종결 짓고, 다른 서사적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김은정은 어느 전시장에서 우연히 봤던 한 남자를 기억했는데, 그의 왼쪽 가슴에 매달려 있던 누런 곰 인형을 기억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 남자와 곰 인형의 중첩이 환기시키는 낯선 감각으로 그가 자주 산책 나가는 집 주변의 공원을 떠올렸고, 거기서 그 감각은 다시 되살아났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아홉 점의 그림 연작에서, 한 남자와 곰 인형의 중첩은 공원에 세워진 동상 속 기이한 인물들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김은정은 자연에 둘러싸인 공원을 배경으로 인위적으로 중첩된 낯선 형상들의 결합에 주목해, 마치 공원 속 기이한 동상처럼 <숲의 소란>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아홉 점의 그림에서는 그 기이한 중첩과 그것의 연쇄에 몰두해, 그 봉인된 결합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전략을 꾀한 듯하다. 

<맑음>(2021), <구름을 타고 출발>(2021), <새 나라의 소녀>(2021), <영원하지 않을>(2021), <영원할>(2021) 등 아홉 점의 먹으로 그린 그림은 모두 그가 어린이 공원에 세워진 동상을 관찰해 그린 것으로, 사실적인 재현이 아닌 허구적 변형이 더 강조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너무 오래 거기 있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희미해진 탓인지, 어린이 공원 곳곳에 붙박여 있는 동상들은 평범하고 진부해서 더 이상 시선을 크게 끌지 못한다. 그 퇴색한 폐허의 형상을 보고 있노라니, 모자상이나 어린이 군상,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기념비적 조각상의 메시지에 잠재되어 있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양가적 순간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중첩된 (거대한) 형상들의 미묘한 갈등에 개입해 다시 (작은) 왜곡을 감행한다. 거대한 세계에서 평범하고 진부한 것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작은 갈등과 균열에 파고들어, 그는 단단한 (서사적 체계의) 봉인을 풀어 놓고자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각적 충동에서 비롯된 일체의 불완전한 형상에 대한 연쇄적인 경험으로 이어져, 분열적으로 반복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전시를 준비해 온 시간 보다 더 오래 매달려 있었던 책 『난민둘기』(찬다프레스, 2018초판/2021개정)에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비둘기의 실존에서부터 그것의 상징성, 역사성, 사회적 함의에 이르는 서사를 파편적인 연쇄로 재구성한 책의 구조는, 개별적인 작품의 조형적 연쇄 작용으로부터 경험적 감각에 이르기까지 아우른다. 끝으로, <11:59>(2021)과 <집, 달콤한 집>(2021)에서, 김은정은 일련의 정황들을 다시 수수께끼의 상황으로 봉인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에칭과 아쿼틴트로 제작한 판화 작업에서, 그는 시간의 경계, 타일 패턴, 집의 원근법적 공간감 등을 부각시켜 거대한 서사들을 뒤로 하고 은폐되어 있는 “작은 것”을 보는 방식에 대한 물음을 환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