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jeong Kim

판단의 보류를 위한 시도
 
장혜정(독립 큐레이터)
 
문득 생각해 본다. 도시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수많은 비둘기(일명 닭둘기)를 나는 단 한 번이라도 ‘귀엽다’라거나 ‘사랑스럽다’라는 식의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아니, 나는 분명 인상을 찌푸리며 피해 다니기 바쁜 사람이다. 비둘기와 관련된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었던 나에게 자리한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지각의 원류는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떠한 인식이 생성된다. 하지만 사실 그 인식과 판단은 직접적이고 사적인 경험보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만들어지기 일쑤고, 부분을 삭제한 채 습관적 혹은 도식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지각해버린다는 것은 대상의 실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일 수 있다. 김은정의 개인전 《연기나는 사람》에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어떤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매체(스크린, 서적 등)를 통해 사건과 대상을 보는 등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아도 작업 속 시선이 향하는 곳은 확실치 않거나, 재현된 상황이나 사건은 명확치 않고, 작업을 통해 표현된 대상에 대한 해석의 방향 또한 모호하다. 그리고 이 의도된 모호함은 보는 이의 성급하거나 도식적인 판단을 보류시킨다.  
 
김은정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하며 일상 속에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바라봤다. 길에 서있는 입간판처럼 놓여 있는 작업 <산책>(2018)과 <방과후>(2018), 그리고 <식물수업>(2018)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가려진 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만이 묘사되며, 이 비범할 것 없는 상황의 목적과 성격을 묘연하게 전환한다. 마치 음 소거 된 영상을 보는 듯한 이 작업은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이 궁금하기 보다는, ‘바라본다’는 행위가 공동으로 일어나는 현장에 주목하게 하고 그 행위가 만들어내는 공통의 판단과 그 속에서 탈락되는 무명의 것을 의식하게 만든다.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일, 타인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반대로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일은 대상의 본질에 대한 불완전한 판단이 만들어짐이 전제한다. 이 부족하거나 뒤틀린 인식의 주체 또는 객체가 됨을 인정하는 것은 종종 우리를 불안하고 두렵게 한다. 김은정의 작업들은 불완전한 판단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벗어날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스스로의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포착되는 대상과 상황들이 위태로운 위기의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는 것일 테다. 올림픽 성화 봉송 현장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그 연기가 성화가 아닌 달리는 사람의 뒤통수에 불이 붙어 피어나는 것으로 상상하여 그려진 회화 <연기나는 머리>(2018)은, 사람들의 환호와 영광스러움에 취해 자신의 머리가 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고 있는 한 사람의 위기 상황을 담아낸다. 그리고 전시 제목을 이 작업과 이어 《연기나는 사람》으로 부르며, 위기에 처한 자신의 현실은 모른 채 달리는 성화 봉송자와 작가 자신 경계를 뒤섞는다.
 
이러한 경계의 흐릿함은 전시 전체의 분위기에 퍼져있는데, 김은정의 작업에 공통적으로 내포된 자유간접화법적 시선이 그 까닭일 수 있다. 인간의 이기적 판단과 타자화가 만들어낸 피해자이자 약자인 비둘기와 고양이를 담아내는 입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최초 애완동물이자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환영받아 도시에 살게 된 비둘기는, 이제 공공의 혐오대상이 되어버렸다. 김은정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비판적 의도가 있음에도 <99>(2018) 나 <99의 행방>(2018) 등을 통해 비둘기를 특별히 아름답지도 반대로 혐오스럽지도 않게 표현하며 작가로서의 통제권을 포기한다. 여기서 그가 통제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판단의 책임을 관람객에게 전가하려는 것이 아닌, 생존의 위기에 처한 비둘기와 작가 본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그린 <아로리>(2018)와 타인의 애완묘를 그린 <패딩속>(2018)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대량 학살된 고양이를 그려낸 <붉은그림>(2018)에 내재한 고양이를 향한 시선 역시 주관적 시점과 객관적 시점이 움직이듯 혼재하여 그 변곡점을 정확히 지적할 수가 없다. 결국 김은정이 취하는 모호한 입장은 등장하는 대상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발현하여 그 실체에 근접해지도록 만들려는 시도이고,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약자에 대한 작가의 연민, 본인도 언젠가 그 주체이거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녹아있는 것이다.
 
김은정의 작업은 결코 외부인이 될 수 없는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 내린 하나의 규정된 판단에서 이탈하고, 이로 인한 불안감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의지의 움직임들의 모임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을 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가지고 나와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며 던진 비판의 말이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인간의 잔인함, 불충분하고 그릇된 판단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견뎌내며, 함께 살고있는 나약하고 희미한 것들이 결국 살아내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의 가치를 붙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실험하는 중인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 시도들이 하나의 묘안으로 수렴될지 아니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공존하게 될지,
아직 판단을 미루고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Attempts to suspend judgement
 
Jang Hye-jeong (Independent curator)
 
It suddenly dawned upon me. Have I ever, at least once, considered the countless flocks of pigeons (so-called Dakdulgi in Korean, combining the words chicken and pigeon), the epitome of the city itself, a subject of affection as being ‘cute' or ‘lovely'? Never. In fact, I'm someone who frowns at them in disgust and avoids them. Pigeons have never really had anything to do with me at all in my life, so where does this negative outlook and perception of them come from?
 
We're always looking at something and building certain perceptions and recognitions of it. However, such recognition and judgements are prone to be made through social conventions rather than through direct and personal experiences, and are habitually or schematically established with parts eliminated. Therefore, seeing, and perceiving it without doubting its process may mean that not much interest is placed on the substance of the actual subject. There are diverse gazes in Kim Eun-jung's solo exhibition Smoking Person, including the artist's gaze on something, people's gaze on something, the artist's gaze looking back on such people, and the gaze looking at events and subjects through the medium (screen, publications, etc.). But no matter how deeply one looks at the works, it's unclear as to where the gaze in the work is headed, what situation or events the images represent, and which direction the interpretation on the subject expressed through the work is headed. And this intended ambiguity suspends the hurried or schematic judgment in the viewer.
 
Kim traveled to places where she doesn't speak the local language, and observed people gathered together, gazing at something in everyday life. In works like Stroll (2018), After School (2018) and Lesson on Plants (2018), which stand like storefront signs, the subjects of the figures' gaze are veiled while only the figures' backs are portrayed, transforming the purpose and nature of such banal situation in a mysterious way. These works which remind one of muted footage, prompt the viewer to focus on a site where the gesture of ‘looking' takes place collectively, rather than stimulating the viewer's curiosity as to the subject of their gaze. The artist then makes the viewer become conscious of the collective judgement produced by such gesture, and the sense of anonymity that's eliminated from it.
 
Looking at myself, looking at others, and others looking at myself assumes the idea of incomplete judgements being made on the essence of the subject. Admitting to becoming the subject or object of such deficient and distorted recognition sometimes frightens us and makes us nervous. Kim's works can be seen as a part of her efforts to overcome her own anxiety as she lives this reality where a series of incomplete judgements take place, where one has no choice but to escape. And that's probably why objects and situations captured in her works are going through a risky time of crisis. Inspired by the TV broadcast of the Olympic flame lighting ceremony, the painting Smoking Head (2018) imagines a person running with the back of his head on fire. The painting captures the urgent crisis of someone too absorbed in the cheers and in his own glory to even notice that the back of his head is on fire.

An extension of this painting, the title of the exhibition Smoking Person collapses the boundary between the artist herself and the torchbearer unaware of the reality of his own critical situation.
 
Boundaries are blurred throughout the exhibition,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gaze in the style of free indirect discourse commonly inherent in Kim's work. The same goes for the artist's depictions of pigeons and cats, which have become weak victims by selfish human judgements and otherization. The very first pet in humankind and welcomed in the city as a symbol of peace and hope, the pigeon has now become the public subject of disgust. Even though Kim has a definite attitude of criticism towards such aspects, the artist surrenders her control as an artist in expressing the pigeons as being neither beautiful nor disgusting in works like 99 (2018) or Coo Coo the Refugee (2018). Here, Kim relinquishes her control not simply to pass the responsibility of judgment to the viewer, but because of the blurred boundary between the pigeons, in a crisis of survival, and the artist herself. Objective and subjective perspectives also mix in works like Arori (2018) which depicts the artist's cat, Inside Padding (2018), a painting about the grave of someone else's pet, and Red (2018), a work signifying cats massacred by human selfishness, making the inflection points in the works difficult to point out precisely. Ultimately, the ambiguous stance of the artist is an attempt to let the subjects that appear in the work manifest in independent and free way so as to near their essence. It also reflects a sense of the artist's compassion for the weak created by human selfishness and negligence, and the artist's anxiety in the possibility that she herself can always become such subject and object.

Kim's works escape the judgements prescribed by the reality in which she can never be an outsider, and are like a convergence of perpetual movements of the will to deviate from the whirlpool of such anxiety. Therefore, I think that perhaps there's a sense of accuracy in someone's critique of Kim's work that it “seems to bring out everything that can be done”. Kim is enduring the anxiety she feels in the life where human selfish cruelty and insufficient and false judgements are repeatedly exchanged, and experimenting with how the weak and vague in life can adhere to their values. It’s hard to judge just yet, and it seems like only time will tell whether such attempts will finally converge on a single idea, or if all of them will inevitably coex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