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jeong Kim
Essays
2024. 9. 작업노트1. 무엇을 온전히 아는 일이 가능할까. 부분으로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자연의 질서'라고 이름 붙인 것은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까. 물고기와 얼룩말 그리고 나방. 어째서 무엇은 어떻다. 쉽게 단정할까. 그 관점은 누구의 것일까. 지구를 관통하는 나무가 있어. 너무 거대해서 뿌리가 반대편까지 자라났어. 잔뿌리가 가득해. 자꾸만 자라. 더, 더, 많이 가득히. 그게 좋아. 원래 그렇거든. 그럼 반대편으로 솟아난 가지는 뭐라고 부르기로 할까. 끝말잇기 같은 그림들, 그림을 넘어 그림으로 이동하는 그림. 구름모양 풍선. 하얀색 언어. 아주 밝은 빛, 때론 깊은 어둠, 그 사이에 무수히 존재하는 공간.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 적절한 고도를 찾아 비행하는 일 과일 속 벌레저럼 뇌우를 품은 구름, 그 위를 날아. 2. 날씨라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공통의 경험'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을 여기에 빗대어본다. 구름(연기)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나 상황을 은유한다. 기체인 동시에 액체, 그리고 형상을 지닌 덩어리는 시시때때로 모양을 달리하여 아주 작은 틈을 넘나든다. 그림 사이를 넘나드는 구름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져 모호하고 제어할 수 없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반복되는 일.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단편적으로 보았던 걸 다시 짜맞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일렁이는 나무와 엉킨 가지, 다리 밑 광활한 하늘과 땅의 거대한 망각. 푸른 베일이 미끄러지듯 벗겨지면 깨어나는 도시 흙길을 밟으며 언덕에 오른다. 그 끝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해질녘의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혜가 뜨고 지는 것. 대수롭지 않은 매일 반복, 새 아침이라 이름 붙이는 일. 3.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는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바다에는 마지 헝깊에 주름이 잡힌 듯 약간 접힌 자국이 있을 뿐이었다. 파도는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잠든 사람처럼, 멈줬는가 싶으면 다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평선은 서서히 그 모양이 선명해지고 있다. 오래된 포도주병의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유리병이 선명한 초록빛이 되듯이.1 4.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그것에 이름을 붙여보자. 흠통(Gutter). 발화하지 않은 생각, 무의식에서 부풀어 올랐다가 사라진 수천 개의 이미지-이미지, 말. 비어 있으므로 가득한 공간. 그 사이로 끊임없이 흐르는 하얀 그림자/연기/새I 고양이. 금고라는 3차원의 공간에 침투해 탐험하는 익숙한 얼굴을 한 선금신수(禪食神獸). 1 버지니아울프, 『파도』, 박희진 역 (서울: 솔, 2019), 9.